글쓰는아빠의 일상

일과 육아, 자산관리

글쓰는아빠의 육아일지 자세히보기

아빠의 육아일기/가족 나들이 여행

코로나 시국 임산부 국내 태교여행 추천지는 어디로가 아니라 누구에게로

글쓰는아빠 2021. 1. 30. 08:40

앞서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었지만, 필자와 아내는 작년 코로나 신천지사태가 터졌을 당시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결혼식을 강행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안전하게 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홀에 비해 하객들이 몇 없었던 건 조금 서글픈 일이지만, 기약없이 미루느니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오늘을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저와 아내는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신혼여행에 대한 아쉬움은 평생에 남을 겁니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국내 어디든 다녀왔으면 좋았겠지만, 아내의 직업 특성상 우린 여행을 기약없이 미루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요양원에 근무하는 아내는 세상이 두 쪽이 나더라도 본인 때문에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죠.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아이가 먼저 생겨버리고 코로나 따위 내일 당장 사라지더라도 몇 년 뒤에나 비행기 탈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을 접고 몇 개월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저 큰 홀에 하객이 없었습니다ㅎㅎㅎ

 

 

그러다 10월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임신 23~4주차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때마침 제 생일도 끼어 있었고, 아내가 출산 전에 울산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입만 열면 목욕탕에 가고 싶단 말을 달고 살 때쯤이었습니다. 코로나 전에만 해도 장모님과 함께 늘 주말이면 목욕탕을 가던 사람이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임산부라 뜨거운 탕에서 지지진 못하더라도 맘편히 때를 못 밀어서 그런 것이니 옆에서 지켜보기 측은할 정도였죠. 

 

그래서 마침내 리스크를 최대한 줄인 태교여행을 기획하고 강행하게 된 겁니다. 

 

 


 

1일차 울산. 슬도, 대왕암공원, 십리대숲 은하수길, 리버사이드호텔

 

 

일단 1일차는 울산에 있는 아내의 친구들을 만나 충분히 수다를 떨 시간을 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다들 일찍 결혼해서 애들을 거느린 입장들이라 하니 방역에 대해선 우리만큼 예민하리란 기대치가 있었기에 플랜을 짤 수 있었습니다.

 

대구 동구 끝자락에서 울산 대왕암공원까지의 거리는 대략 2시간이 소요됩니다. 임산부가 차를 타고 감당하기에 좋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해볼만한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이전보다 잦아진 화장실 출입 빈도를 고려하여 이동경로를 화장실 이용이 편리한 쪽으로 설계한 후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결혼하고 8개월 만에 가지는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슬도 방파제. 하얀색 등대 앞 벤치에 앉은 아내의 뒷모습. 

 

 

일단 아내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우린 슬도부터 먼저 들렸습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잠시 차에서 내려 둘러보는 정도였지만,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바다는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울산에서 해녀들의 물질을 보게 될 줄이야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느낀 점은 둘이서 부둥켜안고 찍은 사진들만 있고,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포스팅을 할 생각도 없었고, 둘 다 사진으로 기록하기 보단 눈으로 보는 쪽을 선호하는지라 아무래도 사진들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슬도 성끝벽화마을은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ㅎㅎㅎ 그런 아름다운 사진들보단 이동 중에 흥미를 끄는 것들만 찍어둔 게 전부네요. 그래서 찍어둔 사진이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입니다. 울산도 바다를 접한 곳이라지만, 당장 우리 목적지에 해녀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1도 없었던 거죠. 단순히 해녀는 제주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들이란 생각의 수준은 참 스스로가 생각해도 내륙 사람다운 빈곤한 발상입니다. 

 

 

 

그래, 너도 마스크 챙겨야지.

 

 

같은 이유로 대왕암공원에서의 사진도 위 짤이 전부네요ㅎㅎㅎ 실제로는 꽤나 걷고 경치도 오래 즐겼던 곳입니다. 당시 아내의 평소 운동량이 부족해 보여서 일부러 더 걷기도 했던 곳입니다. 당시에 대규모 출렁다리를 공사하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헌데, 출렁다리를 어디서부터 어디로 연결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아서 ㅎㅎㅎ 아내와 훗날 다시 와서 확인하기로 기약합니다.

 

 

울산 십리대숲 은하수길. 필자의 짧은 다리와 오동통한 궁디가 인상적인 짤.

 

 

그리고 아내의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일정들은 다 스킵하고 그들과 헤어진 후 ㅡ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태화강국가정원으로 나섭니다. 십리대숲 은하수길은 듣던대로 아름다웠습니다. 종일 걷고, 이동하고, 드넓은 불꺼진 공원에서 은하수길로 찾아들기도 쉽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런 건 조금도 중요치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우리의 아이와,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구간을 걸으면서 아내는 연신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의 태명을 불렀습니다. 저도 아내의 손을 더욱 꼭 잡아쥐고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날들에 대한 이야길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많이 가지지 않아서 다행인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모두 갖추고 시작했던 오늘이라면, 우리가 내일에 대해 이렇게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할 리 없었을 테니까요. 돌아나가야겠단 생각이 든 것도 그때쯤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갈림길을 만나 단순히 지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머리 위로 아름다운 조명이 정말 별처럼 쉴새 없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의 발끝을 더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입니다. 아빠가 엄마의 발걸음이 힘들지나 않을까, 엄마가 아빠의 발걸음이 힘들지는 않을까, 엄마와 아빠가 우리 아이가 종일 힘들지는 않았을까, 서로가 서로를 너무 염려해서 순간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내다본 태화강 전경

 

 

숙소는 태화강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걸로 유명한 리버사이드호텔이었습니다. 솔직히 직접 운전해서 찾아가기엔 길이 그렇게 편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교통 자체가 불편한 게 아니라 초행길 입장에선 진입로 접근이 쪼큼 힘들다 정도?) 역시 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풍경이 안겨주는 건 그럴 걸 다 잊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야경도 굉장히 멋졌습니다만, 야경을 담은 짤은 오히려 창에 숙소 안쪽이 반사되어 비치던 탓에 포스팅용으로는 별로네요 ㅎㅎㅎ 

 

종일 다녔던 탓에 우린 곧장 꿈나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2일차가 더 힘들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ㅎㅎㅎ

 

 

2일차. 양산 통도사, 흑룡사 흑룡폭포, 법기수원지, 영남알프스온천

 

 

고단해서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염려와 달리 우리 부부는 꿀잠을 잔 후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제의 기억이 좋았던 탓에 오늘 일정도 즐거울 것이란 기대로 피곤을 잊은 거죠.

 

 

통도사에서 만난 비단잉어들.

 

전 계획대로 양산 통도사로 향했습니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를 넘긴 뒤라 교통은 수월했습니다. 이쯤에서 통도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더 이야길 하지 않겠습니다. 사시사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든 가볼만한 곳이니까요. 

 

그곳에서 우린 잠시 벤치에 앉아 오늘 남은 일정과 내일의 저녁 식사 메뉴에 대한 이야길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우리가 아직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우리 아기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 경로와 사람들과의 접촉 빈도, 짬을 내어 먹을 음식들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를 확인했던 것이죠.

 

 

 

흑룡사 흑룡폭포

 

 

딱히 종교가 있는 몸은 아니지만, 이 날 하루는 들리는 절, 보이는 불상마다 합장을 드렸네요. 간절해지는 바가 생기니 절로 그렇게 되나 봅니다. 아마 교회나 성당을 들렸다면, 거기서도 분명 그랬을 겁니다. 중요한 건 오직 건강, 건강하기만 하면 우리 가족은 아직 얼마든지 더 이룰 수 있으니 제발 건강만을 부탁드린다 하였죠.

 

 

 

법기수원지

 

통도사와 흑룡사를 지나 법기수원지로 향했습니다. 법기수원지는 식민지 시절에 축조되었으나 2011년에나 일반인에게 개방이 된 곳입니다. 지금 방문해서 확인할 수 있는 둘레길들은 2012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정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못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오히려 나무들이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잘 다듬어진 둘레길을 따라 가볍게 산책을 합니다. 날이 좋아서 햇살이 적당하게 따뜻했습니다. 그 적당함에 취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 모든 살아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보려 합니다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여전히 아내의 발끝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아내가 어루만지는 배가 자꾸 눈에 박힙니다. 가장 위대한 잠언이라는 자연을 바로 앞에 두고도 결국 마음이 닿아 머무는 마지막은 아이와 아내입니다. 

 

 

 

못 주변에는 6그루의 반송이 있습니다. 모두 귀한 녀석들입니다.

 

 

새삼 여행을 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와서 다행스럽고, 그게 어디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게되어 그저 행복합니다. 

 

그래도 행복에 너무 취해 뭐든 때를 놓쳐서는 곤란하죠.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법기수원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조금만 서두르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양산 8경 중 하나라는 임경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조금 더 늦게 도착했다면, 조금 더 물든 사진이 나왔을까요..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 임경대까지 올라 풍경을 담았습니다. 서둘러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넉넉해질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튿날 밤은 영남알프스온천으로 가서 몸을 눕혔습니다. 숙소 사진은 남겨둔 게 없네요. 들어가는 길에 가볍게 식사를 하고, 편의점에 들려 주전부리들을 챙겨갔습니다. 뜨끈한 물에 지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이를 위해 적당히 뜨끈한 물로 온도를 맞추고 함께 가족탕에 들어갈 수 있단 거 하나로 만족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손을 잡고 이야기 해줍니다.

 

이래서 태교여행들을 가나봐?
응? 왜? 뭐가 어때서?
네가 좋아하잖아. 네가 좋으니 우리 아기도 좋아할 테고. 난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게 아니라, 너한테 다녀오는 길인 거 같아. 
그건 나도 그래.

 

 

그렇습니다. 결혼 후 제대로 된 첫 여행은 신혼여행이 아니라 태교여행이었고, 그 여행은 서로에게 다녀오는 걸로.

 

그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