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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초기 첫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 아빠, 지나고보니 나도 임신 기간이 필요하더라

글쓰는아빠 2021. 1. 22. 08:40

오늘은 유용한 정보라기 보단 그저 가벼운 일기라고 해야할까요?

 

이제 곧 열흘 정도만 더 지나고 나면 아이가 세상에 나옵니다.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는 글로 표현하기 다소 어렵습니다. 마냥 기쁘지도, 두렵지도, 초조하지도 않고 그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이고, 그러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긴장감 속에 있습니다.

 

음, 그래도 다행이라면, (사실 아내를 생각하면 조금도 다행일 일은 아니지만,)

아내가 자연분만이 아니라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만 하기에, 출산을 앞두고 느닷없이 닥친 진통을 고스란히 견디는 모습이라든지, 나오지 않는 아기 때문에 악을 쓰며 버티는 모습 같은 건 제가 직접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도 자연분만 고통이 일시불이라면, 제왕절개 수술은 고통이 할부라고 하니...ㅠ_ㅠ)

 

생각해 보면 참 묘합니다. 아이러니의 연속이었거든요.

 

우리 부부는 코로나 덕에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뭣하나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채 아름다운 신혼을 날려먹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좋습니다. 그런 걸 다 해주고 싶었는데 못해줘서 마음이 아플 뿐, 함께 있게 되어 행복한 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으니까요.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코로나 덕에 둘이서 집에만 붙어 있었던 덕인지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던 거죠.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출산 준비를 위한 남편, 예비아빠의 역할? 아니, 내가 당장 책임질 생명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지금부터 적게될 내용들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남겨두려는 건 혹시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음, 조금 더 정확히는 딱, 정확히, 당시 제게 필요했던 글들을 이제와서 적어둔다는 게 맞는 표현 같긴 합니다.

 

 

 

임신초기. 남자들이 그렇게 어리석진 않다.

 

 

그러니까 생리통이 심한 아내가 생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에 이미 사실을 인지하다 못해 감정이 어지러워지는 건 아내도 그렇지만 남편인 저도 그랬다는 겁니다. 그저 기쁘지 않았냐고요? 기뻤습니다. 물론, 기뻤죠. 다만, 앞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우린 코로나 덕에 제대로 된 여행조차 한 번 못가고 모든 걸 미루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 큰 홀에서 직계 가족들만 와서 식을 올렸는데, 신혼여행은커녕 벌써 아이가 생겼다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제 나이를 생각하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빠른 게 맞지만, 아내를 위해 한 번 흐르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조금 더 아름답게 포장해주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 이젠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나씩 해야겠구나 해서 ㅡ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읽으려니 일단 시작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흡연금지, 음주도 금지, 엽산을 평소 챙겨먹고 건강을 챙기면서 준비를 했어야 하는 거라는데, 흡연이야 원래 하지를 않았다지만, 운동은 당시 숨쉬기 운동만 하던 시절이고 엽산은 생각만 하고 장바구니 담아둔 채 결제를 미루고 있었고 음주는 아무래도 둘이서 소주 4병을 마셨던 그날이 문제의 날인 거 같으니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로만 보입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아기를 만날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는 아빠들 중 일부러 흡연을 하고, 음주를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음장으로 넘어갔습니다.

 

호르몬의 변화로 입덧이 올테고, 음식에 대한 갑작스런 갈망도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신체 변화로 임신선과 튼살이 생길 수 있고, 예전과 다른 먹성 덕에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이야기쯤에선 그냥 책을 덮기로 했습니다.

 

입덧이야 어릴 적부터 TV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는 건 처리를 잘해야 하는 걸 테죠. 우리네 아버지들도 어머니들이 야밤에 딸기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해서 온 동네를 다 뛰어다녔던 전력이 있으신데, 그런 걸 모를 수도 없죠. 그리고 상식적으로 호르몬이 들쭉날쭉할 땐 무슨 일로든 쉽게 우울해질 수 있는 게 여성인 건 연애적부터 보아왔던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시절이 예고편이었다면 실전은 장편영화쯤 되긴 합니다만...)

 

뭣보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한다면, 무조건 정기검사 때마다 동행하고픈 게 기본적인 욕심이 아닐까요? 회사 일따위 보단 그런 게 훨씬 더 중요하죠. 

 

헌데, 많은 책과 인터넷 검색물들이 하나같이 그런 이야기들만 하더라는 거죠. 정작 제게 필요한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빠가 된다는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정말 다 괜찮은 거야? 
난 아직 애기의 얼굴도 안 그려지고, 아내도 아직 배가 나오고 있는 줄도 모르겠어.
정말 내가 아빠가 되기는 하는 거야??!!

 

 

초음파. 내 아이의 심장박동을 듣다.

 

 

당장 그래도 할 수 있는 걸 잘해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아내 손에 물 안 묻히게할 각오를 하고 했던 결혼이라 청소를 하거나 음식을 하는 건 조금도 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뭘 먹여 좋을지 모를 판에 먹고 싶은 게 확실하게 생겨서 주문을 주니 그게 더 편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알아서 열심히 하니 아내도 가만히 있기가 미안해서 스스로 알아서 같이 움직였습니다. 물론, 어지간해서는 하지 말고 쉬라고 했었죠. 그렇게 알콩달콩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네,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병원에서 임신이 확실하다고 해주었지만, 그때까지도 아직 가족들 중 누구도 아이를 위해 태몽을 꿔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괜히 초조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직장을 그만두기 전이라서 임신사실을 확인할 때도, 첫 건강검진 때도 아내가 장모님과 둘이서 다녀왔었습니다. 점점 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냥, 코시국이라 회사가 어렵건 말건, 매일매일 칼퇴를 감행했습니다. 여전히 아빠가 된다는 건 멀고 먼 이야기 같았지만, 아내를 혼자두는 건 괜히 더 불안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대구 시내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전 지하철 4정거장쯤 떨어진 거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회사는 시내 중심지에 있는 만큼 접근하려면 차가 많이 밀렸기 때문에, 둘 다 정시퇴근을 해서는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늘 만나는데에만 2, 30분씩 소모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시간을 지켜서 퇴근을 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아서 늘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퇴근을 감행했습니다. 

 

일을 마친 퇴근길 지하철에서 아내가 망할 코로나 바이러스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런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일을 하며, 서로를 마주하며,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정기검사 때는 아내와 병원에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죠. 

 

마치 하리보 곰돌이 젤리처럼 콩알만 하게 생긴 내 아이와. 녀석의 심장박동 소리와.

 

전 정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안녕!!!

 

뭐야? 정말이야?! 정말 내가 여기까지 왔어, 여기까지 해냈어!

 

 

이후로 지금까지 ㅡ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입덧을 하지 않았고, 전 이게 태몽인가 그러기엔 좀 아니지 않나 싶은 묘한 꿈만 두 세개를 꿨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불편과 압박이 더는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의 배는 계속 불러왔고,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만 또 먹일 수는 없어서 중간중간 산책도 함께 하고, 산모 몸에 좋다는 것도 먹이려 애도 써보고, 다리가 저리다고 할 때마다 주물러 주며 그렇게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간 입덧 한 번 요란하게 안하고, 엄마 한 번 놀래키지 않고 지금까지 잘 자라준 아이가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열흘 정도가 남은 이제야, 제대로 된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퇴사를 결심하고 뛰쳐나올 때도 전 무진장 많은 계산을 했었습니다. 퇴직금과 여유자금, 내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자금, 버티는 동안 아내가 힘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생활자금, 그리고 병원비와 산후조리원 비용 등 냉철하게... 따지는 동안 그렇습니다. 가슴은 다소 서늘했던 거 같고, 머리로 많은 걸 가늠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늘 최우선 고려는 아내와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내가 정말 아빠가 되는구나 라는 실감과는 여전히 다르더란 거죠. 오히려 초음파로 아이와 만날 때마다, 태동을 느낄 때마다, 아내가 불편을 하소연할 때마다 저한테 다가왔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들로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준비태세를 갖출 땐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저 막연한 의무감과 책임감만이 느껴지는 무엇이었습니다. 

 

아빠가 된다는 것, 

그것이 안겨다주는 조금 더 복잡한 감성들과 현실감은 전혀 다른 순간들에 찾아오더란 말이죠.

 

그리고 그건 결국 긴 시간을 필요로 하더군요. 이제야 좀 그 언저리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배에 아이를 품고 있는 아내 역시 아직은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기 보단 두려움과 겪어보지 못한 경험 앞에서 감정을 추스리기도 바쁘듯이... 저 역시도 이제야 겨우 아빠가 되기 위한 언저리에 닿은 것 같습니다.

 

 

네, 엄마나, 아빠나, 결국 모두 첫경험을 하는 미성숙한 인간들이라서.

우리 모두 임신 기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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