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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 - 민족이란 코드 말고는 남북관계를 말할 수 없는 걸까?

글쓰는아빠 2021. 5. 25. 00:39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코드로 말할 수 있어도 하면 안되는 게 대한민국이긴 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다 보니 말 못할 건 없지만, 말하기 전에 조심스레 옆사람 눈치를 보긴 많이 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여전히 예민한 '정치적'이며, 동시에 '감정적'인 문제 중 하나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했던 상상과는 그 내용이 좀 달랐다.

 

 

영화는 북의 남파무장공비 철우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철우를 정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단 설정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름부터 같은 '철우'라는 점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지켜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한민족이고, 우리가 원해서 발생한 전쟁이 아니며, 
우리가 나뉜 채로 있는 건 소수의 권력자들 때문이다.

그런 시각을 전제로 짜인 서사물답게 영화 안에서 보여지는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는 나름 그런 관점 안에서 봤을 땐, 충분히 설득이 될 정도로 그럴싸하게 들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관객들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2018년의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25일 이후로 이미 근 7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다. 떠밀려 월남하여 이산가족이 된 당사자들도 이젠 고령으로 숨을 거두고, 그들의 자식들이 남한에서 나고 자라서 완벽히 자본주의 속에 길들여진 상태다.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이 땅에서 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심적인 거리의 차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모두가 망각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뿐인가? 지금의 남한은 북한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개개인들이 고립되고 있는 사회다. 사실 스스로 생존하기도 바빠서 목숨 걸고 월남하는 북한 사람들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월남한 사람들이 왕따를 당하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지원정착금에 불만을 표하고, 개성공단 운영, 금강산 관광과 관려하여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영화 전면에 내세운 '한민족'이라는 코드는 다수의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되면서 동시에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우린 북한을 우리 민족, 우리와 같은 사람, 우리의 형제로 보고 있지 않다. 

 

 

민족 같은 것 이전에... 그저 같은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때문에 남한의 철우는 무엇 하나 설득력이 없다. 실제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청와대에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일한다는 고위공직자가 '민족' 같은 단어, 그런 감정에 저 만큼 쉽게 '적군, 스파이, 간첩'일지도 모를 상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도 되는 것일까?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뭐, 물론, 이게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는 있었다. 남한 철우의 태도가 현 정부의 태도와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 말이다. 

(혹시나 싶어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넘어간다. 이건 현 정부의 태도나 외교적 방향성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단순히 영화 속 인물의 태도, 사건 연결의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단 말이다.)

반면 북한의 철우는 입장이 확실하다. 직속 상관으로부터 지령을 내려받았고, 본인이 성공해야만 현재의 북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단 속임수에 빠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겨운 가난 속에서 가족들의 내일을 보장받았다. 일단 미션 클리어가 무조건적으로 최우선이 되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일까? 남한 철우의 제스쳐에 항상 북의 철우는 일단 의심으로 반응한다. 

다행히 영화가 개연성을 되찾는 부분은 가족들 덕분이다. 북의 철우도, 남한의 철우도 가족이 있다. (여기서 남한의 철우가 이혼을 한 상태라는 설정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이혼율이 높은 남한의 시대상에 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서인가? 확실히 좀 불필요한 설정이라 본다. 오히려 덕분에 남한의 철우는 더 비현실적인 인물이 되고 만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접점의 탄생은 서로의 가족들 안전에서부터다. 그게 상식이다. 다만, 영화는 영화답게 주변 정치적 정세를 더 세밀하게 들추어 준다.

 

 

그러나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수단은 서로간의 가족들이 절대적 위험인 전쟁에 빠질 수 있단 걸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고 '전쟁이 나면 모든 게 끝이다'라며, 주변국들의 반응과 남한의 대통령과 차기 당선자로 대변되는 정치인들을 내세워 국제정세에 대한 긴장감으로 어필한다. 

여기서 영화의 흥미와 긴장감은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로 옮겨가게 된다. 사실 북한 내부의 갈등구조는 단순하다. 김씨일가의 세습 속에서 전쟁준비만 했지 전쟁을 치르지는 않았다는 것이 쿠데타 세력의 대의명분이다. 전쟁준비를 하는 동안 인민은 지쳤고, 더는 지금과 같은 국제정세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판단에 먼저 핵탄두를 사용하자는 거다. 겉으로만 긴장감을 만들고 평화 속에서 체제유지만 해봤자 김정은이만 좋다는 논리다. 

반면, 남한은 훨씬 더 입체적인 갈등구조지만, 현실성은 오히려 좀더 떨어진다. 동맹국 미국의 힘을 빌려 선제공격마저 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쇼킹하다. 물론, 정보의 우위와 북한1호가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과연 미국이 그런 제안을 들어주기나 하겠는가? 결국은 남의 나라 문제인데, 미사일 버튼을 미국이 먼저 누르는 순간, 전쟁과 관련된 일차적인 모든 책임은 미국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러니 제안 가능성을 점치는 것부터가 무리다. 

이야기가 조금 더 진행되면서 다시 한 번 더 당황스러웠다. 전쟁 발발의 위기가 코앞에 닥치자 남한에서 얼쩡되던 주변국들의 외교세력들이 일제히 자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만큼은 또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다. 실제 6.25 전쟁의 발발 배경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 그대로다. 확실히 한반도는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며 종용 받으면서도 모든 파멸적인 결말에 대한 책임은 한반도가 스스로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약자의 입장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대통령과 차기 당선자의 입장은 실제 현실에서 양분된 우리의 여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선제공격은 무리더라도 늘 뒤로는 딴짓을 해온북한을 향해 우리는 퍼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느냐, 한 방 먹일 수는 없느냐 하는 목소리들을 위해 선제공격 같은 무리수 설정을 보여준 것이 얼마간 이해는 된다. 

그래도 여전히 차기 당선자인 이경영의 태도는 여러모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런저런 좋은 표현들을 쓰는데, 결국 '한민족'이라서 라는 논리다. 

 

 

왜 감정적으로만 그리는 걸까? 실리만 봐도 평화통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평화통일, 자주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들은 '민족'이라서가 아니고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왜 이런 류의 영화들은 여전히 민족이라는 코드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잘 팔려서? 그건 아닌 듯 하다. 정치적 관점이 강하게 작용될 수 있는 영화라는 건 그만큼의 특정 집단을 관객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니까...


우리가 미래를 두고 생각해보더라도 평화통일, 자주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그럴 게 아니라면, 중국에게 우리를 팔아버리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가 북한을 저대로 말려죽이면 누가 좋아할 것 같은가? 중국이며, 러시아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가장 당황하겠지..)

북한보고 망해라, 망해라.. 떠드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실제 정세가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족'이란 명분은 사실 터무니 없이 약하다. 자국의 실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제관계다. 중국 역시 6.25에 북한을 위해 참전했었다는 명분이 있다. 러시아는 명분이고 나발이고 중국이 더 커지기 전에 무조건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남한을 돕겠는가? 아님, 일본이 우릴 돕겠는가? 

그러니 북한 패망 이후의 우리 외교관계는 절망에 가깝다. 주변국들의 영향력 행사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할 것이다. 북한과 평화통일을 하거나 흡수통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 반면, 북한이 패망 후, 중국이나 러시아쪽으로 흡수되면 우리에겐 어떤 카드도 없게 된다. 그저 더욱 눈치만 봐야하고, 여러 나라의 경제 속국이 될 팔자인 거다. 차라리 그럴 거면, 북한이 흡수되는 쪽으로 우리도 같이 패키지로 흡수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한 팔자 되는 거다. 

(맞지 않은가? 자랑스런 민족과 역사?? 그것도 개개인이 살아남았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늘 이리 치이고, 저리 터질 텐데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런 나의 관점과는 별개로 영화의 평점은 그리 나쁘지가 않다. VOD가 빨리 풀린 걸로 봐선 손익분기점과는 별개로 흥행이 제작자들의 기대치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확실히 영화가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액션씬들은 충분히 몰입되어 볼 수 있었고, 조연으로 나온 조우진은 확실히 임팩트를 남겼다. 뭐, 곽도원과 정우성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곽도원은 내 관점에서 대단히 비현실적인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자에게만 몰입되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전체적인 무게감이 좋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취향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민족이란 키워드 만큼 위험한 키워드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제결혼을 하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이웃들과 우리의 필요로 인해 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냥 계급을 나눠버리자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21세기다. 공허한 '민족' 같은 키워드보단... 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공감할 수 있단 걸 보여주면 안될까? 그들과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야 우리가 챙겨갈 미래의 실리가 훨씬 크다는 걸 알려주면 안될까? 


 

 


 

 

이번에도 과거 초록창 시절에 써뒀던 글입니다.

블로그 포스팅 외에

 

요즘 출간하기로 한 책의 작업도 밀리고...

매일매일 메일링 서비스의 글을 쓰는 것 때문에 시간이 제법 뺏기고 있네요.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블로그들이 정리가 되어야 하니 

마음은 급하고, 속도는 나지 않고~~ㅎㅎㅎ 뭐, 그런 요즘이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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