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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운더를 보고 - 탐욕으로 삼켜지는 것들에 대한 보고서

글쓰는아빠 2021. 5. 27. 00:49

스포일러 투성입니다. 안 보신 분들은 읽는 것을 삼가해 주세요.

 

맥도널드 탄생 신화를 영화화한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보고나서는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 잔 조차 마시지 않겠다는 분이 계셔서 무척 기대했었던 작품이다. 잔뜩 기대를 하는 만큼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은 법이라 마음을 졸였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다행히 영화는 매우 잘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지극히 미국적인, 맥도널드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상당히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확실히 조명하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그 논조를 강하게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미 실존했던 인물의, 실제 행동 했었던 행위들을 재조명하는 것이라 카메라는 덤덤하게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그 거리감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냉정한 것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관객이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거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러니 '작품'이라 불릴만 하다.

 

 

설립자 맥과 딕. 이들도 자본주의에 충실했었던 자본가들이었다.

 

 

영화는 밀크쉐이크 믹서기를 판매하던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의 창립자 맥과 딕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남은 시작부터 대단히 자본적이다. 영업사원과 구매자로 만난 지극히 비지니스적인 관계니 이보다 더 자본적인 만남이 어디있겠는가? 영업사원 크록은 전국을 돌며 믹서기를 팔아 그런대로 가정을 꾸려서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맥과 딕의 사업체를 보자마자 반해버린다. 그만큼 맥과 딕의 맥도널드는 탐스럽게 잘 익은 과실이었다.

 

 

그때부터 크록의 감아넣기가 시전된다. 굳이 저녁을 먹자고 하고, 굳이 그들의 혁신 시스템에 대해 캐묻고, 굳이 그들에게 프랜차이즈로의 전향을 요구한다. 전혀 관계없었던 제 3자가 최초 설립자 두 사람을 찾아와 유혹에, 유혹을 더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부터 매우 재미있어진다. 

 

 

상식적으로 설립자와 관계가 전혀 없었던 제 3자가 나타나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대화는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한쪽이 거절하면, 언제든지 단절될 수가 있다. 헌데, 대화가 이루어졌고, 제 3자의 제의에 심사숙고를 했다는 건 맥과 딕의 욕망을 크록이 제대로 건들였다는 말이 된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창업자들을 집어삼킨 크록에 비해 맥과 딕이 많이 순진해 보이기는 해도 이 두 사람 역시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충실한 자본가들이다.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패스트푸드 시스템.

 

그들은 시스템을 혁신하여 스피드 푸드. 요즘말로 패스트푸드를 창안해 냈다고는 하지만, 이건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 자본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기계적인 대량생산, 능률, 효율성의 극대화, 항상 똑같은 표준적인 맛. 문자 그대로 상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음식을 찍어내는 것이 딕과 맥의 맥도널드다. 그러니 그들이 창립이념을 운운하고, 원칙에 대해 운운해도 그 말은 그닥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욕망에 이끌려 그들의 닭장 안에 늑대(크록)를 들인 것이다. 

 

 

 

자본이 삼킬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닭장에 들어온 늑대는 당연히 닭을 몰살시킨다. 늑대가 삼키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갈아치우지 않는 것이 없다. 법을 이용하여 맥과 딕의 권위를 축소시키고, 자기멋대로 가맹점을 늘리고 조종하며, 그간 입맛에 맞지 않아도 참고 살던 조강지처마저 갈아치운다. 그뿐인가? 심지어 마지막에 가서는 실제 창립자가 누구였건 그들의 마지막 남은 권리마저 삼켜버리고, 스스로가 맥도널드의 유일한 회장이라고까지 말하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 꼴랑 150만 달러에 권리를 팔아넘긴 딕과 이제는 유일한 맥도널의 회장이 된 크록의 대화는 아찔함까지 안겨준다. 

 

 

나는 알고 있었거든. 맥도널드. 바로 그 이름이야.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황홀함을 나는 바로 알아챘거든.
그래서 당장 사버리고 싶었지!!

 

크록 이전에도 맥과 딕의 시스템을 보고 흉내낸 많은 업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똑같이 패스트푸드를 만들었지만, 하나 같이 실패했었다. 크록은 그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맥도날드' 라는 이름. 바로 그 브랜드 네이밍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봤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의 한계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늑대였다. 

 

 

 

내가 맥도널의 창립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창립자들을 사들일 수는 있다.


그렇게 그는 창립자라는 호칭을 돈으로, 그것도 가치에 비해서 헐값에, 사버린 것이다. 

 

 

맥과 딕의 오리지날 버거는 1948년에 나왔지만...

 

 

현재 맥도널드에는 '오리지날 1955버거'라는 상품이 있다. 실제 맥과 딕은 1948년부터 버거를 만들었지만, 크록의 1호점. 그러니 사실상 맥과 딕의 가맹점이 1955년에 문을 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확실히 그들간의 계약은 법적으로도 이미 끝난 문제다. 크록 덕분에 패스트푸드 사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덕분에 현재 세계인구가 먹어치는 음식의 1%가 맥도널드에서 제공되고 있다고 하니...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의 곁에는 발조차 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본인 뿐만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보다도 더 큰 아픔을 선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매번 그런 사람들에게 놀아나는가?

맥과 딕처럼 우리가 순진해서? 아니, 대체 누가 맥과 딕이 순진하고 순수하다고 하는가? 늑대에게 닭장의 문을 열어준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욕망 탓이다. 우리들이 크록 같은 이들에게 매번 당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제일 먼저 단속해야할 것은 우리들 개개인 스스로의 욕망이다. 크록 같은 이들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아니, 저들은 어떤 울타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들 이용하여 타넘을 종자들이다. 그전에 내가 나의 욕망을 단속해야 한다. 

원대한 꿈을 위한 야망과 무엇이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지만, 확실히 다른 이름이란 걸 잊어서는 곤란하겠다. 

 

 

 


 

 

이 글 역시 몇 년 전에 썼던 글이네요.

 

요즘엔 이만큼 집중해서 보고, 집중해서 쓰는 게 힘들어진 상태라 많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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