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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배앓이 영아산통, 지켜야할 건 사랑이다.

글쓰는아빠 2021. 2. 24. 06:40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24일 새벽 4시. 실전육아 4일차로 넘어가는 새벽이네요. 오늘의 포스팅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제가 겪은 일들에 대한, 실전육아 3일차의 기록입니다. 

 

 


 

이론만 풍부한 풋내기, 모두를 고생시키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갓 태어난 신생아는 위 3가지만 지켜주면 아무런 탈이 없습니다. 위 3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때부터 부모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아마 그 고통은 맨정신에 뜬눈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예리한 칼날들을 그저 숨죽이고 지켜만 봐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최근 48시간 이내에 제가 직접 체감했던 바로는 그렇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아니, 출산을 준비하게 된 시점에서부터 접했던 많은 블로거들과 유튜버들이 강조를 했었던 핵심 내용들이라 이미 관련해서는 충분히 시뮬레이션은 되어 있다고 착각했었던 점들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나도, 나의 아내도, 스스로를 과신했었던 것에 불과했었던 거라는 걸 실전육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조리원을 퇴실하여 집으로 돌아왔었던 첫 날은 가뿐했었습니다. 제가 직접 설계했던 플랜대로 아내에게 식사 3끼와 간식 2끼도 차려줬었고, 직접 아기 똥기저귀도 갈아보고, 안아서 젖병도 물려봤었죠. 행복했습니다. 조금은 몸이 고생스러웠지만, 오히려 제가 기다렸던 순간이라서 가뿐히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조리원 퇴실하던 날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컷

 

 

 

문제는 둘쨋날로 접어드는 새벽부터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론은 그럭저럭 잡다하게 습득을 했는지 몰라도 실전 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아기에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울면 기저귀부터 확인해 본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기저귀라는 걸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상품들을 증정품으로 받거나 선물받은 걸 지니고 있던 터라 매번 기저귀를 채울 때마다 숙달이 되는 게 아니라 기저귀마다 새롭게 공부를 하는 듯 했고, 기저귀 색의 변화도 제품들마다 달라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미 소변을 본 기저귀를 아기가 여전히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기저귀도 멀쩡하고, 유축한 모유랑 분유도 먹였고, 열도 나지 않는데, 대체 아기는 왜 칭얼대는 것일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그저 안아서 달래며 뒤늦게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좌충우돌의 시간 동안 아기가 부모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의사표현은 울며보채는 것 뿐입니다. 그것도 얼굴이 빨갛도록 서럽게. 그런 아이를 보는 아내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몸과 마음이 제법 고단해졌다고는 해도 노하우가 쌓이고, 해답을 찾게 된 것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아기의 3대 중요 노동을 도울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그러느라 누적된 피로를 안고 예정된 스케줄이 있는 3일차를 맞이하게 된 제 입장은... 참, 유감스럽지만 말입니다. 결국, 지난 몇 시간 동안의 위기는 차곡차곡 적립시킨 실수연발과 피로누적 때문이었으니까요.

 

 

 

여전히 원인조차 모르는 첫 배앓이.

 

 

 

이야기를 잠시 틀어서 제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길 해봅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답답하실 수도 있겠지만, 하찮은 저의 신세타령 정도라 생각하고 조금만 인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신혼집은 대구 동구의 끄트머리이고, 부모님이 계신 저의 고향집은 구미입니다. 흔히들 대구와 구미는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고속도로 IC에서 IC까지 신나게 밟으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대구 내 주행, 구미 내 주행까지 더하면, 안전을 위해 소심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저의 애마 모닝으로는 대략 50분에서 60분 가량이 소요됩니다. 왕복은 그러니 2시간이 좀 안되게 소요되는 거죠. 

 

예정된 스케줄이란 게 바로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처음으로 손주를 보여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미션이었죠. 부모님 입장에서는 눈에 밟혔던 늦둥이 녀석이 나이 마흔이 되어 어렵게 장가를 가서 얻은 손주니 얼마나 궁금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코로나 시국 덕에 이제야 보게 되는 거니 저만큼이나 날이 오기만 기다리셨던 겁니다. 그러니 지난 새벽을 하얗게 태웠던 제가 몸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날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죠. 

 

쪽잠 한 두시간을 자다가 깨서 아침상을 차리고, 부모님께 대접할 점심 찬거리도 준비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아차, 또 빼먹을 뻔 했네요. 그러니까, 아마 이쯤에서 문제가 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을 또 놓치고 넘어갈 뻔 했네요. 아내와 저의 아침상을 차리기 전에 당연히 우리 부부를 깨웠던 건 아이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네, 세상에 또 이런 알람이 없죠. 멀쩡했던 정신마저 와장창 깨버리고 시작하는 자동 알람이었습니다. 그러고 아내가 기계적으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다시 속싸개를 둘둘 말아 안아드는 걸 본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이 확실합니다. 문제는 또 역시, 저죠. 저 역시 기계적으로 아이 입에 물릴 분유를 탔습니다. 헌데, 물의 온도가 적정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모호합니다. 이때가 첫 번째 조각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여튼 부모님을 무사히 모시고 왔고, 점심도 삼겹살 한 근을 수육을 해서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였습니다. 아이가 좀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건 말이죠. 어머니께서 벌써 애가 손을 탔네 ㅡ 라고 말씀하셨을 때부터인지, 그 이전부터인지는 또 명확하지가 않지만, 잘 싸고, 잘 먹을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되면 알아서 쉽게 잘 자던 녀석이 아내가 안아도 칭얼대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이전까지와는 좀 달랐던 것이죠. 이전에는 문제가 뭔지를 잘 몰라도 달래면, 달래졌고, 어떻게든, 그러니까 잠시라도 알아서 애가 잘 잤다면, 이번에는 손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울며보채는 겁니다. 그 시간대를 회상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던 아내는 전혀 다른 조각을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젖병이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젖병소독기에 넣고 건조, 살균을 돌렸음에도 물기가 몇 방울씩 남아서 나왔는데, 그걸 그대로 사용해서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의심되는 두 번째 조각입니다. 

 

계속 이야기가 오락가락 하네요. 뭐, 그래도 어쩔 수가 없네요. 천성이 소설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실제 경험담이라도 이런 구성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러니까 순서대로라면 세 번째 조각에 대해서 바로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글쎄, 제 천성이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이야길 다시 부모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해야겠네요. 편도 5~60분 소요 주행을 4번 한 것이죠. 부모님을 태우기 위해 대구에서 구미, 태워서 구미에서 대구, 다시 태워서 대구에서 구미, 내려다 드리고 빈 차로 구미에서 대구. 왕복 2번. 대략 200분은 족히 소요된 겁니다. 그만큼 그 빈 시간 동안 아내는 혼자서 아이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되돌아와서 대문을 연 제게 아내는 간단히 이렇게 이야길 해주더군요. 제가 아침에 집을 나선 이후로 지금까지 아이가 제대로 잠들었던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고요. 안아든 아기를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대체 왜 이런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애가 탄다고요. 저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고, 행여라도 더 나쁜 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게 막아서기 위해 아내에게 짐짓 단호한 투로 말을 했습니다. 

 

 

ㅡ 보챈다고 매번 안아주지 말고 거리를 둬. 혹시 검색은 해봤어?

ㅡ 아니, 이 와중에 그런 걸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때를 맞춰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빨갛다 못해 검게 물들 정도로 달아올랐고, 입술마저 바르르 떨었죠. 그런 아기를 보는 아내는 어땠을까요? 종일, 아니, 품에 아기방을 만든 이후로 오늘까지, 오직 아이만을 위해 모든 걸 양보했던 아내입니다. 오직 아이가 잘 크기만을 바라서, 열심히 노력한 아내입니다. 헌데,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다고 표현할 수조차 없는 아기의 통증, 알고 있는 걸 바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아내 앞에서 그 통증은 보란듯이 아내를 부정해버리는 겁니다. 착한 아내의 마음을 너무나 간단히, 어렵게 쌓은 모래성을 단박에 허물어버리는 파도처럼, 아기의 울음소리가 맹렬하게 덮쳐오는 겁니다. 아, 제 아내가 순간 느꼈을 자괴감을 저는 너무 쉽게 알아버립니다. 순간 흘러내린 그녀의 눈물이 제 심장을 차갑게 태웠으니까요. 그저 조용히 한 손으로 아내를 안고, 한 손으로 아이의 배를 쓸어내리며, 저는 세 번째 조각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냥, 물려받은 소독기가 이미 정상이 아닐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결국엔 또 사랑이 정답이다.

 

 

부랴부랴 폭풍 검색을 했고, 재빠르게 불안요소들을 제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아무래도 배앓이 같네요. 인터넷 웹상에서 떠도는 정보를 취합하니, 딱 배앓이 같습니다. 심지어 명확한 답도 없다고 합니다. 대략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런 현상은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얼마든지 계속 되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경험적으로 키우면서 주에 3~4회씩 주기적으로 앓았다는 분들이 수두룩하더군요. 유일한 대처 방법은 마사지 등으로 가스배출을 도와주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또 통증이 찾아오면, 그때서야 후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능동적인 선제조치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신생아 영아산통, 즉 배앓이는 아기의 성장과정에서 간혹 동반되는 어쩔 수 없는 통증이고, 이게 자연히 사라지는 증상이며, 결코 치명적인 질병은 아닙니다. 다만,  직접 어디가 불편하다고 표현할 수가 없고, 스스로 몸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제어능력이 전혀 없는 아이 입장에서는, 그리고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입장에선 진짜 돌아버리기 딱 좋은 통증인 거죠...)

 

저는 이제 피어난 생명인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어쨌든 의심스런 조각들은 모두 일상에서 치워버리고 당장 아이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할 겁니다.

 

우선 젖병들은 수동으로 직접 다 끓는 물에 소독을 하고, 건조도 기기를 사용하여 두 세번 되풀이 했습니다. 물 온도도 다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끔 아내와 함께 고민을 했습니다. 이후 남은 건 마사지 등을 하며, 아이가 트림을 하도록 유도를 하고, 정상적으로 대변을 보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파악이 이루어지고,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한 시간이 저녁 8시경이었습니다. 이후로 글을 쓰기 시작한 새벽 4시까지 전 제 손에서 아이를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품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쉬지 않고 주물러주고, 끊임없이 등을 쓰다듬어 내렸습니다. 그래서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이르러서 마침내 정상적으로 대변을 보는 것까지 확인을 하였고, 이후에 반응을 살피며 직접 젖병을 물려 먹는 양까지 체크를 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일단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 합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현재는 새벽 6시를 넘기고 있고, 조금 전 3시간 정도 잠을 잤던 녀석은 깨어나서 약 80ml의 분유를 먹어치웠네요. 

 

이젠 저도 긴장이 풀려서 잠이 들만도 한데,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던 건 그 과정에서 남은 제 감정 때문입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즉효라 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는 증상이라 함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앞서 저보다 먼저 아이를 만났던 대한민국의 세상 모든 부모들이 지금의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내 아이가 늘 지금처럼 편히 잘 수 있었으면 그저 좋겠다는 그런 마음

 

 

 

사랑은 형체도 없고, 질감도 없고, 그저 막연한 인간의 감정일 뿐입니다. 그에 비해, 현실은 아이의 고통처럼 구체적이며, 그런 구체적인 서슬퍼런 칼날들이 도처에 깔려 있고, 시시때때로 우리의 뒤를 베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사랑을, 때때로 너무나 약하고, 쉽게 부서지고, 쉽게 잊히는 것처럼 그 존재를 부정해버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고 상처입은 마음들은 쉬운 도피처로 물질을 찾곤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늘 이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이끌어온 건 물질이 아니라, 결국 개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었습니다. 크고, 작든, 많든, 적든, 물질은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용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사랑이 빠진 채 물질이 돌고 돌았던 적은 없습니다. 욕심의 형태와 수단이 저마다 달랐을 뿐, 결국은 사랑이었습니다. 

 

그저 비약이 심하고, 글쟁이의 근거없는 허튼 허풍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저는 이렇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글로 남겨 주변에 뿌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이를 위해 잠을 하얗게 태운 아빠가 있다는 건 그 아빠를 위해 또 밤낮을 까맣게 몽땅 쏟아부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분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와 형, 그들의 가족같은 친구들이 모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요. 

 

 

 

아, 슬슬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쩌면 저들의 잠을 제 아이가 홀라당 다 앗아가버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은 마음이라 부끄럽기에 저도 이제 그만 눈을 감으려 합니다. 

 

 

 

 


 

 

현재 제가 처음 의도한 것과는 달리 포스팅 순서가 뒤죽박죽이네요. 일단 당장 내일에는 구체적인 배앓이 대처방법, 그러니까 마사지랑 운동법 등을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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