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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담론, 탈근대를 살아가게 하는 힘에 관해

글쓰는아빠 2021. 6. 3. 00:31

 

두껍다. 그런데 쉽다. 희안하다.

 

 

신영복의 담론을 읽었다. 기본적인 두께가 있고, 제목이 '담론'인만큼 결코 완전 쉽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읽어봤던 이런저런 담론서적과 철학서적에 비해서는 훨씬 읽기가 편했다. 물론, 거론 되는 많은 작품들을 직접 읽은 게 아니라서 다소 답답한 면도 있었고, 내용 자체가 방대한데, 챕터별로 그냥 지나치려니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다. 역시 이런 류의 서적들은 시간을 오래 들여서 읽어야 제맛인데... 안타깝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책의 구성이다.

다른 이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각 파트별 내용을 적어뒀던데, 그걸 굳이 내가 또 여기서 다시 갈무리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에 대해서만 간략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저자 신영복의 논리에 따르면, 

세상은 정반합, 인과관계만 가지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 그가 펼쳐보이는 논리와 그 근거들인데, 동양고전을 이용하여 풀어내는 그의 주관은 굉장히 뚜렷하면서도 유연하다. 특히 주역을 끌어와서 말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인데, 전체적으로 진행되는 그의 강의 흐름은 그런 걸 금방 묻어버리게 만든다.

(실제 나는 주역을 이용해 다채로운 우주변화와 사람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유쾌하기까지 했다.)

 

 

책을 접거나 줄을 그으며 읽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내가 이만큼 접어뒀다는 건 그만큼 건질 내용이 많다는 게 되겠다.

 

 

책의 1부는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게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고전들이 세상에 남겨진 시간순서대로 엮어둔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신영복 선생이 서두에서 명확히 밝혔듯이 단순히 어떤 사상과 철학이 세상에 등장하여 정반합에 의해 다른 사상이나 철학이 대두된 것은 아니기에, 각 챕터별로 관련 자료나 인물을 대하는 태도는 대단히 객관적이며 디테일하다. 따라서 각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하는 부분들이 챕터별로 늘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인간들의 '관계'에 주목하는 저자의 시선이다. 고전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신영복 선생의 주요 관심사는 근대사회를 이룬 자본에 있고, 그 시스템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 인간에 있다. 때문에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눈여겨 보는 것은 얼핏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의 한문적 깊이는 그 이상이다. 인간들 관계의 다채로운 변화양상을 필연적으로 보면서 그걸 안아내는 내공의 깊이는 동양고전인 시경에서부터 비롯되어 근대의 자본론까지 주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대로 여세를 몰아 근대의 자본론까지 주우우욱~ 이어지게 몰아쳐주면 더 좋으련만, 선생의 강의는 돌연 마무리가 되고 근대사회의 자본론, 그 무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강의 중간중간 언급하는 수준에서 그쳤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2부로 넘어가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실망을 했었다. 이토록 다른 톤으로 진행이 될 거라면, 굳이 이걸 1부, 2부로 나눠서 굳이 한 권 안에 엮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에서다. 허나, 이 생각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책의 2부는 선생의 수감생활 이야기다. 동시에 선생이 공부하여 익힌 바를 스스로의 인생에 적용하는 파트이며, 한 인간의 지행이 합일점을 보이는 파트이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담론은 책의 두께 만큼이나 할 말이 많은 책이긴 하다. 
허나, 이 자리에서 그걸 구구절절히 쓰는 건 의미가 없지 싶다. 그러려면 챕터별로 쪼개고, 또 문장별로 다시 쪼개어 정말 '공부'하는 자세로 임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서는 짤막하게 '지행합일'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고 글을 마치겠다.

대중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건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동안 서점가에서는 동양고전 다시 읽기가 유행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전혀 안 읽히던 '장자'가 근래 들어 빅히트를 치며 여러 대중들에게 읽히기도 했었다. 

이런 현상들을 볼 때마다 아쉬운 건 
대체 왜 고전이 중요하고, 좋은 것인지, 스스로의 가치주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니 무작정 따라서 읽다가 
넘쳐나는 텍스트에 짓눌려서 물러서는 독자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텍스트를 '견디는' 이들의 자세도 안타까울 때가 참 많다.
이런 서적들을 읽는 이유는 '삶의 태도에 대해 공부'하기 위함인데,
보통은 거론되는 작품들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거나 문장을 분석하는 것으로 
단순히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신영복 선생의 이 책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본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긴 부분들을, 스스로 오랜 시간 실천하며 살다가 갔다.
그 발걸음이 얼마간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는,
그의 실천이 마더 테라사와 같은 무한한 이타심과 자기희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개인이 
스스로를 마지막까지 다독이며, 
스스로의 변화과정을 직접 묵도하고 
스스로 지키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런 노력이야 말로 탈근대 사회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나 아닌 다른 인간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나부터 내가 공부하여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며, 
인생에서 쉼없이 몰아쳐올 변화에 유연해지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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