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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면역력을 상실한 우린 결국 표류하게 될 것인가?

글쓰는아빠 2021. 7. 27. 08:49

출간된지 이미 1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아래는 이 책을 소개하는 문학과 지성사의 링크다.

 

 

http://moonji.com/bookauth/6478/

 

한병철 | 문학과지성사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1994년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에는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데리다에

moonji.com

 

 

한국 사람이 독일까지 넘어가서 공부하고 거기서 현지언어로 출판한 책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소름돋는다. 우리보다 훨씬 복지가 잘 된 선진국 독일인들조차 자본주의로 인한 성과주의에 진절머리를 쳤다면... 대체 우리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하기사 그러니 이런 담론서적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만큼 읽혔던 것은 아닐까?

시덥지 않은 소리는 우선 각설하고...

리뷰가 많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수준의 리뷰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뭐,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다수의 독자들이 나처럼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인용된 각주만 하더라도 수 십개인데, 착실하게 속독으로 본문만 읽었다는 말이다.)

덕분에 저자가 착실하게 기존 담론과 이론, 철학의 한계성을 지적한 부분이 과연 사실인지는 모른 채다. 다만, 이런 담론들이 그러하듯, 우선 저자의 논리 전개는 마치 실재하는 우리 사회를 꿰뚫는 것 같으며, 모든 사회현상에 그럴싸하게 적용되는 듯은 하다. 

그래서일까? 떠도는 많은 리뷰들이 딱 내가 읽은 정도 만큼만 읽은 티들이 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이런 서적을 날림으로 읽어도 이해가 단박에 될 만큼 저자가 유려하게 잘 썼다는 말이다. 그리고 독자가 그렇게 읽는 게 뭐,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담론 서적들은 학문적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얼마간 이런 비평서적을 읽지 않은 독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기 마련이다. 아니, 정확히는 생소한 단어 하나, 하나를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더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처럼 날림으로, 속독이라도 완독을 한 이들이 있다면, 다같이 자축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 젠장.
또 삼천포로 너무 가버린 듯 하다.
정말 잡소리는 각설하고, 본론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우선 면역학에 대해 거론을 하며, 우리 사회가 면역적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는 면역적 기능을 활성화할 만큼 현재 '전지구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대체 무엇이 긍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면역학에 기반하여 그 기준을 말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어떤 현상이라면, 그건 실제 '나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에 반대하는 어떤 현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전지구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
당연히 자본주의이며,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성과주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쟁은 불가피하며, 경쟁에서의 승리는 미학의 정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보편성'을 가장한 '극단의 보수성'이기도 하다. 

우린 이런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당장 일례로 
책을 읽는 사람은 현명하다란 문구보단 
하루 일당이 30만원인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다 라는 명제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왜냐면, 현명함 같은 확인과 검증이 어려운 모호한 진실보단 
30만원이라는 명확한 자본적 가치가 훨씬 이해하기 편한 것이다. 막말로 이런 산수 아닌 산수는 초딩들부터 노인들까지 누구 하나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거다. 
(게다가 여기서 실제 그 사람이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고민의 거리도 안된다. 일단 하루 일당이 30만원이라면, 연봉으로 치면 주말을 제외하더라도 5,000은 쉽게 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연봉 5,000 이상을 받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우린 분명 조금은 감성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위와 같은 사실들을 금방 수긍해 버리고 만다. 
왜냐면,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주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그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오늘도 노동, 아니, 스스로 착취하는 행위를 쥐어짜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우린 어떤 저항도 없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간혹 사소한 잡음은 있을 수 있어도 잡음에 불과하다. 당장 실물도 아닌 비트코인이 정식 거래소가 생겨서 통용되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IMF를 겪고, 리먼 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전혀 반성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당시의 패배는 시스템을 잘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해석에서 빚어지는 결과라 봐야할 것이다. 

(사설을 좀 덧붙이자면, 비트코인이 정상적인 암호화폐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본적 가치의 변화폭이 지금처럼 널뛰기를 해서는 곤란하다. 헌데, 몇몇 투기꾼들에 의해 이미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들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상상해 보라, 정말 미래사회에서 이게 일상화폐처럼 전세계에서 통용이 될 것이라면, 그 가치의 유동폭이 적어야 글로벌 기업단위로도 거래를 할 거 아닌가? 지금 같아서는 마진폭이 없는 상품을 박리다매하는 입장의 모든 업자들은 이딴 화폐를 결코 쓰지 않을 것이다.)

비트코인이란 예시가 너무 극단적이라면, 그 이전부터 봤던 다른 걸로 예를 들어보겠다. 
대략 러쉬 앤 캐쉬와 산와머니, 웰컴론, 피씨방쯤이면 될 것 같다. 

대부업으로 인해 피해자가 늘고 있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대부업 업체들은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이 업이 합법이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대부업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상적으로 소비자가 있고, 약관에 따라 서비스를 해주는 주체가 있으니 사라질 일이 없다. 대부업은 그렇게 '보편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이 사회에 굳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때문에 피해자라고 자청하며, 불법사채를 규제하자고 하는 목소리들은 있어도 힘이 없다. 상품을 판매하고, 사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 정점이다. 피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멈출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어떤 확실한 대의명분이 있거나 대안이 없는 이상에는 그들의 볼멘소리는 지나치는 잡음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소수'이며 '보편적'이지 못하기에, '보편적인'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그들의 의견은 거절 당하는 것이다. 

피씨방으로 대변되는 게임폐인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만들어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먼저 폐인이 되어달라 한 적이 없다. 소비자가 선택한 것이니 책임은 소비자, 개별자들에게만 있는 거다. 그러니 여성연대라는 사람들이 자기네 아이들을 위해 이용시간을 제한하느니 하는 것도 그저 잡음에 불과하다. 게임이용자들 중 그런 미성년들은 어차피 아이템 구매결정력도 떨어지는 층이다. 여전히 훨씬 더 큰 시장층이 살아남아 있다. 

(그러니 자본은 수익성을 극대화 하는 반대적 의견들 앞에서 항상 '보수적'인 얼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것도 현재는 수요보다 공급이 초월한 사회이며, 이제는 기업단위가 아니라 개인단위로도 끊임없이 스스로 마케팅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전지구적'으로 불필요한 지출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어디서도 '실제하는 수익'은 없다. 자연스럽게 모든 경쟁이 과열된다. 

우린 그런 극단의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착취한다. 
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더 노력하면,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좀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정말일까?
사실은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런 효과를 돕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종의 자기개발서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 수록 '피로'해지기만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수익은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영위하는 생활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럴 수밖에. 이미 '자본주의' 자체가 모순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도 하루 일당 30만원 같은 산수가 훨씬 쉽게 이해된다. 어쩔 수가 없다. 그 시스템에 갇혀 우리 모두는 사색의 힘을 잃었고,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자본주의를 대처할 만한 어떤 철학이나 이념이 잉태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착취하고, 스스로를 치유할 힘을 잃어버린 작금의 시대, 작금의 사회가 바로 피로사회.

다가올 미래, 면역력을 상실한 우린 결국 표류하게 될 것인가?




사실 책의 결말은 피로의 이원화를 말하며, 다소 낭만적인 인식을 보이며 끝을 맺은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말.. 그건 인문학자의 소박한 바람 같은 것으로만 보인다.

현생 인류에게 돈보다 좋은 것이 있고, 돈과 행복이 '='이 아니라고 백날 이야기해봤자
그게 씨알이나 먹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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