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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 위화의 인생을 읽고

글쓰는아빠 2021. 8. 3. 00:11

달과 6펜스, 인생

 

 

두 권 모두 가공인물의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작가들이 동시대의 인물들이 아니고, 국적이 다른 만큼
이야기는 그 색깔이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ㅎ

아, 그럼, 작가들부터 소개를 해볼까요?

 

서머싯 몸 선생 1874년 1월 25일 출생 ~ 1965년 12월 16일 사망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은 영국인이지만, 출생은 파리였습니다.
유년기의 성장은 영국에서 하게 되지만, 청년기에는 독일에서 유학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런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달과 6펜스를 보면,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에 있어 물리적 배경은 큰 제한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쫓는 작가의 시선만이 있으며, 
그 시선을 따라 런던에서 파리, 타히티로 배경 무대는 마지막까지 변화합니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인상의 위화 작가. 1960년 4월 3일 출생 - 현재까지 끊임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인생의 저자 위화는 서머싯 몸 선생이 잠들기 5년 전쯤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현재 나이 오십줄을 넘기고 내일 모레 육십을 바라보고 있는 이 작가의 인상은
영락없는 동네 쌀집아저씨입니다. 인상이 매우 푸근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순박한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 대중들에겐 하정우, 하지원 주연으로 유명한 영화 '허삼관 매혈기'는 그의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인물들이 얼마나 정감있는가?)

 

 

 

영화는 예상만큼 히트되진 않았지만, 미인 하지원이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었다...

 

그럼, 타고난 이 두 이야기꾼이 어떤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냈는지를 조금 더 들쳐보겠습니다.

 


 

 

이상과 광기의 정신 달, 생계와 물질의 수단 6펜스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는 대단히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달과 6펜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다 읽은 후에도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 왜 달과 6펜스인 것인데???'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문학작품에서 소설의 제목이란 자연스레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머싯 몸은 그런 점을 아주 잘 이용했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곱씹어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참고적으로 '달'이 예술세계를 지향하는 바이고, '6펜스'는 화폐로는 보잘 것 없는 최소 단위이고, 그래서 둘다 은빛을 내는 동그란 물체들이지만, 여러모로 다르고... 등등등은 전부 평론가들의 한 가지 견해일 뿐입니다. 절대 고정된 해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한 가지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만 달리는 인물입니다. 그만큼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명쾌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 실제 화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하여 탄생한 인물입니다. 실제 고갱보다도 더 극단적이고 소설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스트릭랜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오직 '그림을 그리는' 예술적 행위 하나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고흐의 자화상,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스트릭랜드와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역시 모티브는 모티브일 뿐.

 

 

때문에 소설 달과 6펜스는 스트릭랜드라는 한 남자를 사로잡은 광기에 대한 고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작품 곳곳에서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종종 직접 서술되고 있기도 합니다.

 

 

비단 예술과 예술인 뿐만이 아니라, 예술이란 장르의 형성과 그 모순에 대한 것조차 낱낱이 서술된다. 그러면서도 이 유능한 글쟁이는 그 모든 순간들로부터 한 발 떨어진 자세를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덕분에 소설은 꽤 재미나게 읽힙니다. 게다가 소설 전반을 이루는 갈등구조들은 자극적이기도 합니다. 그 갈등구조란 것이 다수의 일반인들과 오직 자신의 욕망, 예술을 구현하겠다는 욕망에만 사로잡혀 움직이는 스트릭랜드 한 개인의 갈등이라는 단순한 도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스스로 우리를 지켜가기 위해 만들었던 일반인들의 도덕적, 법적 굴레가 얼마나 연약한 것이며, 일반인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폭력이란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 형태로 빚어지는 것인지도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나에겐 스트릭랜드와 같은 열정이 있는가? 그 열정들은 어디로 갔는가...?!!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들어 결국 의지를 불태우게끔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ㅎㅎㅎ)

 

 

인생은 살아간다는 것. 순응과 용서, 순간의 행복

 

 

그에 반해 
위화 작가의 소설 인생은 조용조용합니다. 사건들은 시간 순서에 따라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 사건들은 하나같이 굵직굵직한 비극들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푸구이는 그걸 매번 다 받아들이고 순응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든 사회적 시스템과 관련자들마저 암묵적으로 용서합니다. 

때문에 이 입체적인듯 하면서도 비입체적인 인물의 인생사 앞에서 때로는 난감하기도 합니다.
우리네 정서로는 조금 납득하기 힘든 면도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마지막장까지 담담하게 묘사하고, 서술합니다.

그 메시지는 실로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매순간의 비극에 대한 보상이란 것이 실존했었던가? 이런저런 사건들로 일희일비한 적은 있었을지 몰라도 아들을 잃었으니 부자가 된다거나 아내와 사별했으니 무병장수를 한다거나 처럼 우리 인생이 우리에게 따로 뚜렷한 보상을 내린 적은 없었다. 다만 우리가 어찌못할 사건들은 수시로 노크해올 것이고, 우리는 그 사이사이, 그 순간순간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맛보는 정도가 아니었던가?"

물론,
소설 속에서 화자나 주인공 푸구이가 저렇게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감상이기는 합니다. 

-
소설 인생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작가 황석영씨의 작품들과 영화감독 이준익의 작품 몇 개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갈등 하나하나를 천천히 쌓아올라가는 그들의 서술 방식이 조금은 닮아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만큼 좀 클래식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대략적인 감상 정도만 남기겠습니다.

아무래도 두 작품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고, 제 성격상 여기서 더 자세히 써내려가게 된다면, 스포일러는 피할 수가 없는데... 두 작품 다 아주 재미나게 읽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군요.

다만 다 읽고 난 후에 이런저런 의구심들도 많이 생겼었는데요,

1. 작품이 그렇다기 보다는 서머싯 몸, 본인도 그 시절 남정네들처럼 남성우월주의자이지 않았을까?
2. 위화의 태생이 사회주의 공산권인 중국이 아니라 초자본주의 미쿡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소설이 등장했을까?

하하하,
앞으로 책을 읽어보실 여러분들도 이런 물음을 가져보신다면 더 재미날 것 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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