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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트 쥐스킨트

글쓰는아빠 2021. 8. 5. 10:08

우리는 서로 작용하며, 부조리한 많은 것들로부터 싸우기 위해 스스로 빛이 된다.

 

 

 

 

향수, 좀머씨 이야기를 쓴 쥐스킨트의 단편모음집이다.

(솔직히 매우 유명한 책이라서 내가 굳이 또 서평을 남길 필요가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는 단편 3개에 작가의 개인적 에세이 비슷한 글 하나다.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일종의 형식을 차용했을 뿐, 4개의 단편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많은 서평들이 각각의 단편들을 따로 두고 말들을 하던데..

나는 이 4개의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삼각뿔을 이룬다고 봤다. 
(3개의 단편이 삼각뿔을 형성하면, 나머지가 그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꼴로 형상화 된 것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먼저 놓이게 되는 소설 '깊이에의 강요'는 평론가의 비평에 짓눌린 한 예술가의 이야기다. 

비평가와 창작가의 관계는 서로간에 할 말이 참 많은 관계일 수밖에 없다. 헌데, 이 소설은 서로 간의 설왕설래는 생략하고 예술가의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글이 마무리 된다. 비평가의 평가가 일방적으로 작용을 한 것이다. 

이 소설은 단편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등장인물의 '자살'이란 특정 행위, 특정 소재로 인해 시작부터 굉장한 무게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어지는 글 역시 이만큼의 무게감이 없다면, 다른 많은 시시한 단편소설모음집처럼 첫 번째에 놓인 소설만 건질만할 글이 될 터다. 

다행히 이어지는 단편 '승부'는 이런 기우를 깔끔하게 접어준다. 소설은 관습적인 루트를 벗어나 전혀 예상밖의 변칙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관록있는 동네 체스 챔피언을 궁지까지 내몰며 압박한 젊은 승부사를 조명한다. 

여기서 나는 두 소설이 팽팽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는 직관을 얻었다. 비평가. 곧 기존 문예평론세력, 기득권이 창작자 한 개인에게 얼만큼 잔혹하게 작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 전편이라면, 이어지는 소설 '승부'는 한 개인이 기존 세력, 기존의 질서와 기득권에게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속편인 셈이다. 
이쯤되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다음 소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이 심각하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앞의 두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볼 것을 던져준다. 기존 세력이 개인에게, 개인이 기존세력에게 이렇게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아니, 어쨌든 개인보단 기존의 기득권이 더 탄탄하며,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인데, 그렇다면, 개인에게 기존질서란 얼만큼의 무게감일 수 있을까?

쥐스킨트는 이를 두고 '조개'라고 단순하게 상징화 해버린다. 우리 집 앞뜰에도, 지구의 반대편에도 어디에나 있다는 조개. 지구를 '석화(石化)'시켜 버린다는 이 조개는 누구에게나 '조개'다. 그래서 모두를 좁혀온다. 이건 개인이 기득권에게 가하는 위협이며, 동시에 기득권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이다. 이 긴장감은 어느 쪽, 누구의 입장에서건 동시에 '불합리'한 무엇이다. 그럼 이 모순과 불합리가 가득한 현실에서 개인은 그저 무력하기만 할 것일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결국 뮈사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를 돌보던 그의 가정부는 그에 대해 아주 짤막하게 평을 남긴다.

 

그 분은 빛과도 같았습니다.

 

 

결국 개개인이 진주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일 테다. 헌데, 그렇다면, 그 방법은?

정확하게 맞물린 삼각형의 꼭지. 3편의 단편소설들 사이에 무게중심을 잡아줄 점 하나가 더 붙게 된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쓴다.

 

 

이야기의 주술성에 휘말려 책을 읽고, 또 읽지만, 인간의 망각은 정직하다.
읽은 내용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다시 얼마간을 읽어야만 책의 맛을 알게 된다.

그런 휘발성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작가 자신인 쥐스킨트는 쓰고, 또 쓰려고 한다.

결국,
한 개인이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불멸을 노력을 가하고, 또 가하는 것.

그것이 스스로의 몸뚱이가 석화되어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유언장을 써내려갔던 장인 뮈사르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책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스테디셀러가 되었다지만...

권해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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