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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정말 반사회주의 소설로만 읽을 것인가?

글쓰는아빠 2021. 8. 10. 09:29

민음사의 세계고전문학을 읽고 있는 요즘이다. 차례대로 읽고 있는데, 이 속도로 읽는다면,
과연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권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어보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과는 확실히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은 아동의 눈을 의식하여 어딘가 결말을 동화적으로 바꿔놓은 것 같다. 아무리 어릴 적이라고는 해도 너무나 생소한 이미지니 말이다. 

여튼, 각설하고.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진정으로 좋은 소설이었다. 

 

 

좋은 책은 오래도록 읽히고, 새롭게 읽힌다.

 

 


 

 

조지오웰, 스탈린의 구소련 사회주의를 까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구소련의 사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는 건
책 좀 읽었다고 시원하게 방귀 뀌어보려고 폼잡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상식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모두의 그루트(?)라는 나무위키에 가보면,
상징성이 딱딱 들어맞는 도표까지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친절한 모두의 그루트(?)

 

물론, 고전명작, 아니, 좋은 소설답게 
이딴 배경지식 하나 없어도 정말 재밌게 읽힌다는 미덕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니
저런 표따위는 무시하고 읽을 걸 강권하는 바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라고 검색만 해도 사회주의, 구소련, 스탈린, 체제, 공산당 등의 연관검색어가 주~우욱~ 함께 떠서 골고루 함께 뜨니 사실 주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실제 책이 발표되던 당시에도
이 소설이 스탈린의 구소련을 까고 있단 이유로 본인의 국가인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널리 읽히게 된다.
(당시 영국은 소련과 동맹관계라 오히려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스탈린을 깠다고 해서 그가 반공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자.

 

 

아이러니한 건 실제 조지오웰은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이다. 좀더 정확하게는 그는 어릴적부터 전체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했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조지 오웰이 태어난 시기는 '대영제국의 시대'였다. 비록 빅토리아 여왕은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식민지국가들을 상대로 한창 곳간을 채우고 있는 중이었으니 사실상 영국의 황금기였던 것이다. 그는 그런 영국의 황금기에, 영국이 식민지로 삼았던 인도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라서 입학한 학교는 그에게 '대영제국의 영원한 부흥'을 위해 식민지 속국을 관리할 관리자가 갖추어야할 지식과 덕목들을 주입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바로 그 부분을 혐오했다. 어린 나이의 그였지만, 확실히, 체질적으로 '인간의 계급화'를 부정했던 것이다. 덕분에 오웰은 버마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자기혐오를 견디지 못하고 일을 때려치우게 되고, 이후부터는 소위 밑바닥 생활을 하며 세계를 떠돌게 된다. 

(그러면서 쓰게 된 글이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며, 거기에서 그의 사회주의적 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 글을 아직 직접 읽지는 않은 입장이라 언급하기가 부끄럽다.)

여행과정에서 조지 오웰은 천성적으로 불편해하던 '인간의 계급화'와 '사회적 부조리'에 눈뜨게 되면서 당시의 모든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사회주의 사상에 깊게 입문하게 된다.

 

 


 

헌데, 그랬던 조지 오웰이 어째서 구소련을 까게 된 것일까??

조지 오웰은 천성이 순수했던 만큼 사회주의 사상에 깊게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성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계급없는 인간 사회를 만들자고 하니까 말이다! 
(근데 흙수저, 금수저가 없어지고, 모두가 같은 수저를 쓰면, 그걸 가지고도 불평하는 것이 인간이더란 말...)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순수하지가 못했다. 그저 또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에 불과했으며, 계급을 없애자고 선동했던 무리들 스스로가 또 하나의 지배계급이 되어 다수의 하층계급들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국가가 구소련, 대표적인 지도자가 스탈린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가 실제 펀치를 날린 대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닌,
그것을 철저하게 악용한 스탈린의 구소련 체제였다.
조지오웰의 눈에는 그것이 식민국가를 지배하던 영국보다도 비합리적이었을 뿐.

결코 그가 기존의 전체주의를 인정하거나 한 것도 아니며, 동시에 사회주의 자체를 부정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사는 대한민국도 농장 중 하나다.

 

 

이 소설이 시대가 지나도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지 오웰의 명확한 통찰력에 있다.

모든 체제는 부패할 가능성이 있고, 모든 인간이 권력자를 욕망하고,
계급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냉철하게 파악해낸 작가의 눈. 

때문에 이 소설이 단순하게 당시 '스탈린 체제를 깠던, 사회주의를 깠던 소설'이다 라고만 기억되고 그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재미를 오롯이 느끼기 위해선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다룬 조지 오웰에 대한 배경이나 이 소설의 탄생 배경 같은 건 모두 다 걷어내고 

그저 현재의 우리 사회, 우리의 근현대사에 맞추어서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예를 들면,

9마리의 개들을 보면, 영화 1987의 박처장과 그의 무리들이 떠오르고,
양들을 보면, 권력의 나팔수 노롯을 했었던 언론들이 떠오르고,
복서를 보고 있자면, '내가 버티면 가족들이 살 수 있다'는 일념으로 오늘을 버티는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떠오르고,
돼지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이 차례대로 떠오른다.

어째서 외국인이 쓴 시대소설이 이렇게 우리사회의 그늘과 절묘하게 맞아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단순히 조지 오웰이 '스탈린의 체제'만을 비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더 근원적인 층위에서

'인간의 계급화'와 '사회적 부조리'를 짚어봤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휘두르고,
그 결과가 피지배계층에게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가를 직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때문에 소설은 자연스럽게 어느 나라의 정치 현실에 대입을 시켜본다 하더라도
얼마간은 자연스럽게들 맞물리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문학비평가들이 말하는 상징과 은유의 힘일 수도 있겠지만,
그 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또다른 이야기이지 않을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번 폭염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소설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본 포스팅은 2018년쯤에 다른 사이트에 직접 포스팅했뒀던 다시 퍼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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